보리밭 S자 사이 길로
// 이제는 보리밭으로 소풍을 다니는 시절이다. 저 대열 안에 그 옛날 철, 식, 웅이와 자, 숙, 순이도 있을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고향 마을에 ‘지리지리 지리리’ 잔망스런 날개 짓과 함께 종다리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 땅에 새봄이 찾아왔다고 알리는 경쾌한 팡파르나 다름 없었지.
둘러보면 너랭이 들녘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꿋꿋이 이겨낸 보리들이 씩씩하게 어깨를 맞대고 한 뼘씩 자라 있었거든.
옳지. 방금 보리밭 이랑으로 숨어 들어간 종다리 뒤를 따라 머리를 숙이고 잰걸음으로 따라가면
어느새 낌새를 알아차리고 잽싸게 바람결을 따라 ‘노골노골 지리지리’ 까마득히 날아오르던 종다리.
눈을 들어 그 날개 짓을 따라 꽁무니를 쫓다보면 현기증 나게 다가서던 푸른 하늘.
내 모를 줄 알고... 내 알 찾으려는 거지.
고놈 참 얄미운 녀석, 친구하자는 건데. ^)^
유년시절의 놀이터와 같았던 보리밭을 결코 종다리와 떼어놓고 추억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게야.
그즈음 들녘엔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눈부시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던가?
삼동내 ㅡ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 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최근에야 알고 익혀 암송하게 된 정지용 시인의 ‘종달새’ 전문이야.
마지막 구절의 ‘모래톱’을 ‘보리밭’으로 바꾸면, 아,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지 무언가.
어린 시절의 나의 속내를 이렇게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일찍이 어머니를 떠나보낸 소년, 유난히 낯을 가리고 수줍음 많아 놀 때도 늘 혼자였던 소년,
그 곁에 단짝이 되어준 보리밭 과 종달새...
저녁에 비가 내린다 했지.
해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간간이 서풍은 불어와 물결처럼 보리밭을 흔들고
넘실거리는 보리밭 사이 길을 걸으며 나는 어느덧 반백년 전 소심한 소년으로 돌아가 있었다오.
/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