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리밭 S자 사이 길로

그 서풍 2015. 5. 4. 17:59

 

// 이제는 보리밭으로 소풍을 다니는 시절이다. 저 대열 안에 그 옛날 철, 식, 웅이와 자, 숙, 순이도 있을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고향 마을에 지리지리 지리리잔망스런 날개 짓과 함께 종다리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것은 이 땅에 새봄이 찾아왔다고 알리는 경쾌한 팡파르나 다름 없었지.

둘러보면 너랭이 들녘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꿋꿋이 이겨낸 보리들이 씩씩하게 어깨를 맞대고 한 뼘씩 자라 있었거든.

 

옳지. 방금 보리밭 이랑으로 숨어 들어간 종다리 뒤를 따라 머리를 숙이고 잰걸음으로 따라가면

어느새 낌새를 알아차리고 잽싸게 바람결을 따라 노골노골 지리지리까마득히 날아오르던 종다리.

눈을 들어 그 날개 짓을 따라 꽁무니를 쫓다보면 현기증 나게 다가서던 푸른 하늘.

 

내 모를 줄 알고... 내 알 찾으려는 거지.

고놈 참 얄미운 녀석, 친구하자는 건데. ^)^

 

유년시절의 놀이터와 같았던 보리밭을 결코 종다리와 떼어놓고 추억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게야.

그즈음 들녘엔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눈부시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던가?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 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최근에야 알고 익혀 암송하게 된 정지용 시인의 종달새전문이야.

마지막 구절의 모래톱보리밭으로 바꾸면, ,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지 무언가.

어린 시절의 나의 속내를 이렇게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일찍이 어머니를 떠나보낸 소년, 유난히 낯을 가리고 수줍음 많아 놀 때도 늘 혼자였던 소년,

그 곁에 단짝이 되어준  보리밭 과 종달새...

 

저녁에 비가 내린다 했지.

해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간간이 서풍은 불어와 물결처럼 보리밭을 흔들고

넘실거리는 보리밭 사이 길을 걸으며 나는 어느덧 반백년 전 소심한 소년으로 돌아가 있었다오.

                                                                                                   /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에서

 

https://youtu.be/m-8_o6riA6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