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대전 현충원에서
/ 사병 제2 묘역 전경
한 번 국군은 죽어서도 국군이다.
옥녀봉 너머로 하루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단연 묘역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잠에서 깨어난 병사들의 헛기침소리가 메아리 진다.
마침 '3315' 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글쎄 그날 말이여. 그녀가 넋을 놔 불고는 어뜨케
울어쌋는지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있어야제. 가슴이 미어져 불드만."
그가 눈시울을 붉히자 삼삼오오 둘레에 진을 치고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열을 올렸다.
"야, 3315! 너 임마 낮은 포복에 높은 포복, 각개전투를 벌였구나야."
"와우,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에 옆으로 취침, 유격훈련도 지대로 했것다."
"와따, 마지막엔 화생방 훈련처럼 헐떡이며 고지를 점령해 부렀겠다!"
그들은 죽어서도 군기 충천! 온통 지난 추억으로 얘기꽃을 피운다.
오늘은 또 어느 신병으로부터 신고식을 받고 있을까?
야, 임마 똑바로 못해!
어쭈, 요거 봐라!
군기를 삶아 묵어부럿냐!
그곳에선 유격장처럼 계급장을 뗀다.
모두 하나 같이 올빼미가 되는 것이다.
해마다 유월이면 우리가족은 대전 국립 현충원을 찾습니다.
그곳에 막내 동생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군하사 김말용의 묘” 주위에는 나름의 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동료들이
마치 국군의 날 열병식을 펼치 듯이 누워 있습니다.
한 번 국군은 영원한 국군입니다.
'3315' ―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번호의 경계를 쉽게 벗어날 수
없나 봅니다.
국군 수도 통합병원 영안실로 오라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어머니를 모시고 형님과 저희 가족은 부랴부랴 서울로 내달렸습니다.
와전이거나 착각이기를 바라며 반신반의하던 우리는 이미 싸늘하게
굳어 버린 동생의 주검을 확인하고는 밤새워 넋을 놓았습니다.
저는 만 34개월 동안 군 생활을 했고 형님은 월남전 맹호부대 소대장을
역임한 역전의 용사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참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입대하기 전 말용이와 시내 한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환송을 겸한 자리였는데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좋은
이름 자(字)가 없겠느냐고 진지하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선친께서 굳이 막내라는 뜻으로 끝 말(末)자를 넣어 작명하신 게지요.
한 참을 생각하던 저는 나름대로 "보배 진(珍)자를 쓰면 좋겠다. 막내이니
집안의 보배가 되어다오." 이렇게 격려를 하고 진용(珍容)이라 부르게 되었어오.
참 키도 크고 탐나게 생긴 놈이었는데...
녀석은 죽어서도 효도하고 마침내 집안의 보배가 된 것인가요?
“이곳은 호국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계룡산 자락 옥녀봉 아래 조성된 묘역에
초여름의 햇살아래 푸르름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충성! 육군하사 김말용,
1988년 2월 9일 경기도 양주에서 순직!”
국군은 죽어서도 관등성명을 댑니다.
“충성! 김말용 하사, 쉬어, 편히 쉬어!”
동생하고 마주앉아 맥주 한 캔 나누고 왔습니다.
밤하늘의 트럼펫 : 트럼펫 연주
/ 현충지, 통일의 염원을 담아 한반도 형상으로 조성한 연못, 옥녀봉 계곡의 물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