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반티아이 스레이 수호여신 '데바타'

그 서풍 2014. 2. 14. 17:37

 

 

친구야!

마침 건기(11~4)의 막바지에 접어든 '반띠아이 스레이' 사원의 붉은 황토 마당에는 마른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거든

나는 그날 온통 붉은 색조를 띤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을 거닐며 마치 붉은 꽃이 만발한 거대한 정원에 들어 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

이만하면 첫인상이 얼마나 강열하게 다가왔을지 짐작하겠나?

여기저기 천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피어난 청록색 이끼와 검붉은 생채기까지 성스럽고 아름답게 보였지.

사원의 이름은 여인의 성체를 뜻하는데 새겨진 문양과 부조가 마치 섬세한 여성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수를 놓듯이 조각하였을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군.

어때 멋있지 않은가?

 

 

그 규모나 크기 면에서는 다른 앙코르 사원과 비교할 수 없지만 예술적 가치를 놓고 보면 크메르 예술의 극치’ ‘크메르 왕조의 보석이라는 칭송을 들을 만하더군.

앙코르 유적의 대부분이 바르만()이 세운 사원인데 반해 이곳은 자야바르만 5세의 스승인 바라문 승려 야즈나바라하가 조성한 개인 사원이래.

건축시기가 10세기 중반인 967년경이라고 하는데 원시림에 묻혀 깊이 잠들어 있다가 1914년 프랑스의 지리 관측장교에 의해 뒤늦게 발견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사원이 유럽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문화성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의 탈취사건 때문이라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

(말로만 듣던 '말로'의 명성의 이면에 이런 이중인격이 자리하고 있었다니... ㅋㅋㅋ)

과거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90여 년간 식민통치를 받게 되는데 그가 1923년 방문하여 이사원의 수호신인 문제의 데바타 여신상을 4점 밀반출하려다가 적발되면서 부터라고 해.

그래서 인지 이곳 사원에는 다른 곳과 다르게 경찰이 상주하면서 라인을 설치해 놓고 여행객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어.

 

 

 

//문제의 반티아이 스레이의 수호여신 '데바타' (좌 우 대칭 편집한 사진)

 

그가 실형을 선고 받은 후 풀려나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왕도의 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이 여신상을 보기위해 서양인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실제로 씨엠립의 카페의 거리에 넘치는 서양들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 유럽의 어느 거리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더군.

오늘날 캄보디아가 해마다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 이면에 담긴 '말로'의 지대한 공헌(?)을 지나칠 수 없으렸다.ㅋㅋ 

 

 

데바타 여신상은 과연 원더풀! 동양의 비너스이자 모나리자라는 이름을 듣기에 넘치도록 눈이 부시고 아름다웠어.

데바타의 얼굴에 어린 미소는 아, 그것은!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더 고혹적이었고 몸매는 서양미인의 롤 모델인 밀로의 비너스보다 더 육감적이었지.

도톰한 입술,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유난히 길어 보이는 하체 등 여성성에 대한 아름다움의 숭배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앙코르 와트 사원 벽면에는 천상 무희 '압살라'가 다양한 표정으로 양각되어 있었는데 '데바타'처럼 하나 같이 볼륨이 참 팽팽하더군.

 

앙드레 말로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데바타, '만약에 나라고 해도...' 그 치명적인 유혹을 비껴가기 어려울 것 만 같으이. ㅎㅎ

어때 친구야, ‘말로야 말로 자기감정에 참 솔직했구먼.

그렇다면 자네라면 어찌했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