똔레삽, 적나라한 삶의 현장
동남아시아의 젖줄, 모든 강의 어머니라 불리는 메콩강이 없는 인도차이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유사 이래 생명의 근원과 같은 강 유역을 선점하기 위하여 민족과 국가 간에 치열한 혈전을 거듭하였을 것이다.
메콩강은 티베트 고원이 발원지이며 세계 12번째로 긴 강, 유수량으로는 10위이다.
오늘날 유역에 티베트와 중국의 광시성, 동남아의 국가가 거대한 생활권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 기내에서 촬영한 똔레삽 풍경, 이곳에도 소위 명당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공항에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는 기내의 창으로 구름이 점점 옅어지는가 싶더니 캄보디아의 산하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똔레삽 호와 수상 마을 위에 이르자 순간 집중호우로 인해 수많은 가옥들이 유실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말았다.
'이런, 우리의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걸 아닐까' 하고 지레 걱정을 하면서. 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가이드에게
대뜸 이곳에 홍수가 난 것이냐고 물었다.
무슨 얘기냐는 듯 황당한 한국인 가이드, 이곳은 지금 건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ㅋㅋ 수상촌이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겠는가.
크메르어로 똔레(tonle)는 강, 삽(sap)은 거대한 담수호라는 뜻. 건기 때는 물이 메콩강으로 흘러나가 4월경에는 제주도의 두 배 정도로 줄어들지만 우기 때는 범람하는 메콩강이 역류되어 절정인 11월경에는 강원도 땅 만큼이나 불어나는 동양에서 가장 큰 담수호라고 한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똔레삽은 온통 걸죽하게 시뻘건 황토물 천지이다. 수상촌 주민들은 이 물을 이용해 빨래와 목욕, 취사를 한다. 그리고 쓰레기. 생활하수, 배설물 등을 그냥 이곳에 버린다.
"이그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지레짐작이고 기우일 뿐이다.
똔레삽 물은 의외로 깨끗하다고 한다. 바로 이 황토물이 살균하고 정화시키며 강한 자외선이 수표 면을 소독하기 때문이다.
자외선 농도가 무려 한국의 3~4배나 된다. 황토 땅을 가진 캄보디아가 천혜의 보고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얼마나 기름지겠는가.
이곳에는 양질의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캄보디아는 메콩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어서 범람할 때마다 똔레삽으로 상류에서 많은 유기물과 다양한 물고기들이 유입되어 강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원나라의 사신으로 온 '주달관'의 여행기 '전랍풍토기'에는 "고기가 너무 많아 노를 바로 저을 수 없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풍성한 어족자원을 자랑한다.
특히 많이 잡히는 고기의 이름이 리엘인데 캄보디아의 화폐 단위가 바로 "리엘"이다.
전 국민이 섭취하는 단백질 공급량의 60%를 이 똔레삽에서 얻고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수상촌 주민들은 대부분 땅 위에서 살 수 없는 캄보디아의 극빈층과 베트남 난민들이라고 한다. 주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고 똔레삽 투어에 나선 관광객들에게 음료와 맥주, 담배 등을 팔기도 한다.
우리 일행이 탄 배가 중앙으로 들어서자 굉음을 일으키며 필사적으로 달려들던 모터를 장착한 쪽배 위에는 아, 시선을 끌기 위해 이렇게 비단뱀을 목에 두르고 큰소리로 "원달라 원달라!" 외치는 꼬맹이 들... 그들의 목소리와 시선이 절박하다 못해 애처롭게 다가왔다.
이처럼 가혹한 일상의 삶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너 댓살 정도의 어린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삶의 주요 터전이 다만 물 위 일 따름이다. 수상촌에는 학교, 경찰서, 병원, 교회, 식당, 야채가게, 당구장, 마트, 주유소 등 지상마을처럼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소위 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일하는 등 일용행사를 다만 물 위의 마을에서 행할 뿐이다.
저들도 나름의 꿈과 희망이 지니고 살아 갈 것이다.
땅 위의 삶에 길들여지고 굳어진 편견으로 어떻게 저들의 삶을 쉽게 예단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나친 결례가 될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자리 잡고 살다가 더 나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곳으로 집을 배로 끌어 옮기면 이사는 끝이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위 차이가 심해서 한 해에 5~6회는 이사를 다녀야 한단다.
말뚝을 박고 선을 그어 철저하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정녕 똔레삽에는 인위적인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수상 가옥 식구들과 함께 음식을 들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하루 밤 잠을 청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육지 안의 바다와 같은 똔레삽, 거대한 수평선 위에 지는 노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습지에 자리 잡은 신비한 숲 홍수림 사이를 누비며 보트를 타는 느낌은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으리라.
먹이가 풍부하고 산란에 적합한 환경이 갖추어진 철새 도래지에는 그들만의 찬가가 울려 퍼지리라.
주마간산 격으로 바람에 옷자락 스치듯이 잠깐 배를 타고 스쳐 지나가면서 감히 똔레삽의 수상마을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다음에 기회가 있어 나만의 프리 스타일 여행을 한다면 다시 이곳을 찾고 싶은 곳이다
이제 캄보디아는 앙코르 와트와 함께 똔레삽을 품고 있는 나라로 더욱 기억하게 될 것이다.
|
// 똔레삽 민속 악단, 선착장에 자리한 이들은 배에서 내리는 일행의 국적을 쉽게 알아내고 마춤형 연주를 한다.
이역에서 듣는 아리랑 선율은 유난히 감미롭고 신선했다. 나만의 호젓한 여행이었다면 몇 곡 더 청해 듣고 싶을 정도였다.
일행이 기꺼이 사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