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녹원의 대를 소재로 만든 팔각정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는 미당 선생의 절창과 어떻게 견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사철 대숲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더불어 자란 셈이다.
삼면이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지냈으니 대숲에 얽힌 살가운 추억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엄동에 성근 대숲을 훑고 휘몰아치는 매서운 북서풍은 마치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처럼 맹렬하게 다그쳐 왔다.
눈보라까지 겹치면 작은 방의 툇마루까지 눈이 쌓이는 건 예사이고 뒤틀린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솜이불 속에 자라처럼 웅크린 날, 밤새워 대나무들은 눈보라와 한 판 힘겨루기를 하다가 온몸에 눈발을 허옇게
뒤집어쓰고 시위가 당겨진 활처럼 휘어져 있곤 하였다.
발돋움을 하고 슬쩍 머리채를 잡아당기면 부르르 몸을 떨고 용수철처럼 눈발을 튕기며 솟구치던 대나무 영상은
겨울철에만 감상할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졸랑거리는 강아지마냥 즐거웠다.
통대를 반으로 쪼개어 매듭을 매끄럽게 다듬고 앞부분을 불에 휘어 만든 스케이트를 타고 다져진 눈 위를
배고픔도 잊고 신나게 지치곤 하였더니라.
바로 뒤에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던 우리 집(해서 이름이 너랭이다)은 그곳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갈
즈음이면 대숲이야 말로 참새 떼의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후여, 후여!” 외침에 놀라 날렵하게 숨어든 참새들의 극성스런 재잘거림에는 윤기가 좔좔 거렸다.
대숲은 그들의 신명나는 난장과 같았다.
집안을 감싸 안을 듯이 팔을 벌린 아름드리 살구나무아래 감나무와 어우러진 대숲은 비둘기와 야생 조류들의
아늑한 휴식처이기도 했다.
// 죽녹원의 비둘기
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 쓰고 대숲아래 평상에 누우면 더위는 저만큼 달아나고,
더위에 축 늘어져 맥을 못추던 바람이 대숲에만 들어서면 슬금슬금 일었으니 참 오묘했다.
할아버지는 대자리를 펼친 평상에서 대목침에 오수를 즐기시거나 장죽을 입에 물고 하릴없이 댓잎을 흔드는 바람결을
헤아리고 계셨다.
봄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대숲에는 단연 생기가 흘러 넘치고 서로 수런거리기 시작하였다.
이즈음 텃밭 여기저기 삐죽 고개를 내밀던 죽순, 춘궁기에 미각을 돋우던 고마운 죽순, 어머니는 아침 밥상에 죽순
된장국과 초무침을 즐겨 올리셨다.
어느덧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대숲을 흔드는 봄바람이 짙어지면 아, 꽃비처럼 하롱하롱 번지던 연분홍 물결,
우물가에 장독에 부엌에도 넘실거렸더니라.
철따라 햇볕과 눈과 비 그리고 뭇 새들과 바람이 찾아와 머물다 가곤 하였다.
봄 죽순, 여름 살구, 가을 감에 고구마와 무를 거두던 뒤란엔 항상 생명의 싱그러움이 움트고 있었다.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그 시절 부추꽃, 감자꽃, 양파꽃... 오늘도 눈가에 선연하기만 하다.
바람 잦은 날 후드득 대숲을 흔들며 쏟아지던 초록비, 떠 올리기만 하여도 즐겁기만 하다.
내 고향 너랭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 담양 하천 대나무 습지 탐방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