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원은 파리의 루불, 런던의 대영,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국제적인 명소이다.
1965년 4층 중국 궁전양식으로 건립된 이곳은 중화권 문화의 보고로서 타이완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신석기 시대에서 청나라 말기까지의 왕조의 유물 등 세계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희귀 보물 약 70만점이 소장되어 있다.
시설의 한계로 한번에 1만 5천점 밖에 전시하지 못한다고 한다.
유물은 3개월에 한번 씩 주기적으로 교체되며, 1년에 6만점 정도가 전시된다.
소장품 전체를 다 전시하려면 무려 12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전시품은 역대 중국 황제들의 개인 소장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부분 옥, 금, 칠기, 자기 등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원형 보존이 비교적 잘 되어있다.
그리고 중국의 한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많은 경전과 서적, 서화가 즐비하다.
이 방대한 보물은 장개석 국민당이 대만으로 퇴각할 때 1949년 본토에서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해서 본토인들이 자조적으로 '장제스가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빼 놓고는 모든 유물을 다 가져갔다'고 말할 정도이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진을 참고하였다.
추이위바이차이 (취옥백채 翠玉白菜 폭 9.1cm, 높이 18.7cm)
단순한 배추가 아닌 이곳 박물원을 대표하는 보물로서 진을 치고 있는
본토 관광객들을 비집고 들어가야 비로소 관람할 수 있는 귀하신 몸이다.
청나라 제11대 광서제의 왕비인 서비가 혼수로 가져온 예물이라고 한다.
줄기의 하얀 부분은 순결을, 초록 잎은 미와 젊을을
자세히 보면 한 쌍 메뚜기가 있는데 이는 다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황제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는 한 여인의 지극한 구애를 품고 있는 것이다.
과연 서비의 진심이 통 했을까? 그들 사이에 자녀는 몇이나 두었을까?
옥이 지닌 천연 형태를 기막히게 활용하여 조각한 배추이다.
이 옥 배추에는 양안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때에 일화가 담겨 있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진 본토의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만을 UN에서 탈퇴시키고 올림픽에도 독립국가 자격을 박탈시켜 버렸다.
그러던 중국이 대만의 UN 가입 조건으로 비밀리에
제안한 것이 바로 '취옥백채'를 돌려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제안을 대만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으니
이 옥배추가 지닌 무한한 예술적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옥은 온전히 흰색이거나 녹색을 지녀야 최상급으로 친다고 한다.
'취옥백채'의 옥은 흰색과 녹색이 섞여 있어 급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재료가 지닌 결함을 한 장인이 예술적인 안목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배추와 곤충으로 절묘하게 표현, 중화권을 대표하는 보물로 탄생시킨 것이다.
러우싱스 (육형석 肉形石)
청나라, 흡사 비게와 그 아래 지방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이는 교조라는 옥을 가공해서 만든 작품으로
고기 형태의 돌이라 이름도 육형석이라 하였다.
금방 김이 솟는 솥에서 꺼낸 제육처럼 식감이 넘친다.
기름기가 좔좔, 번들번들한 게 육즙이 절로 흐른다.
금강석 치아를 지닌 사람만이 드실 수 있을 것 같다. ^)^
죽사전지번련다보격원합 竹絲纏枝番蓮多寶格圓盒
높이는 24.5CM, 접으면 지름 18.5CM, 황제의 노리개라고 한다.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안에 있는 원형선반은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장식장 안에는 총 27가지의 사실적인 형상들이 들어있다.
부채꼴을 펼치면 뒷부분은 병풍 모양이 되고 접으면 원형의 통이 된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상아를 자르지 않고 통째로 조각한 것으로 구안에 구,
또 구안에 구, 이렇게 17개의 구가 들어있다.
놀랍게 17개의 구가 서로 분리되어 있어 각각 자유롭게 회전하고
각 구에 새겨진 원형의 구멍을 일치시킬 수가 있다.
또한 17개 구의 표면에 각각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한 가문의 장인 3대가 약 100년에 걸쳐 수공으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안으로 파고들어 갈수록 심혈을 기울여야 할 작품이다.
실로 장인 정신의 귀감, 놀랍기만 하다. 양파 속도 아니고...
조부가 아버지로 다시 아들로 환생을 한 것일까?
일명 상아 다층구(象牙 多層球)로 황제의 노리개라고 한다.
清, 中期 雕象牙四層透花提食盒
Ivory four-tiered food carrying case in openwork relief.
H : 45.4 cm, L : 30.4 cm, W : 21.6 cm
상아로 만든 도시락
清, 前~中期 雕象牙龍舟(帶蒔繪雞形盒)
Ivory miniature dragon boat
상아로 만든 용 모양의 배
문화재란 무엇인가?
장개석 국민당이 모택동 공산당에게 쫓겨 눈물의 퇴각을 하던 절명의 순간에 중국역사의 문화재를 챙긴 것은 무슨 연유인가?
고궁 박물원을 이따거(가이드)를 따라 둘러보며 그리고 어디나 진을 치고 있는 본토인들을 보며 ‘하나의 중국’을 떠 올렸다.
그들은 서로 노선이 달라 한 때 피를 흘리며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지금은 문화재를 통해 뿌리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거 다 우리 꺼 아냐?” 한 본토인의 탄식 속에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짙은 회한이 담겨 있다.
문화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중국이 잦은 왕래와 교류를 하면서 이러한 탄식과 자각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그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가 될 것이다.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이렇게 미우나 고우나 왔다 갔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주 만나면 말 문이 트이고 없던 정도 생기지 않겠는가?
문화재란 결국 한 나라(민족)를 결속시키는 역사의 정수이자 원천인 것이다.
장개석, 그는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지녔다. 그는 결코 패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