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삼일야화
낯익은 스탠드 불빛, 저 녀석이 나를 잠에서 깨웠구나.
이곳에서 삼일 밤을 묵었다. 방금 마지막 잠에서 눈을 떳다.
몽롱함을 떨치고 일어나 베개에 코를 박고 큼큼거렸다.
712호, 이곳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조금은 낯설어 했던가.
나는 손을 들어 먼저 인사를 했어야 했다.
안녕, 잘 지내자!
생각해보라. 매일 찾아오는 다른 발자국 소리에 얼마나 당황했을까를.
세면도구를 꺼내며 체온처럼 번지는 스탠드 불빛에 안도하였다.
이곳에서 일 년 중 삼일 밤을 머물게 된 것이다.
하루 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 나라가 아니던가.
문이 닫히면 세상과 결별하는 성역에 첫날밤 아, 그녀가 찾아왔다.
선뜻 붉은 입술 열어 세헤라자드는 한 남자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밖에서 언뜻 비치는 빗방울 소리...
이튿날 저녁, 밤에 다녀야 제 맛이라는 스린士林 야시장에 나갔다.
끈적거리는 땀과 음식냄새, 질펀한 사람 물결에 관광객까지 휩쓸렸다.
짭잘하고 부드러운 핫스타(닭튀김)를 파인애플 빙수와 곁들였다.
돋아난 소름에 낯선 얼굴, 언어들이 어느덧 친근하게 다가섰다.
금문 고량주와 컵라면과 망고, 친구들의 걸쭉한 입담을 뒤로하고
돌아와 나는 침대 위에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스치듯 그녀의 몸짓에서 해맑은 오이 향이 풍겨왔던가.
아름다운 세헤라자드, 그녀와 함께 사흘째 밤이 깊어갔다.
이윽고 이튿날 아침이다. 떠날 시간이 되었다.
무거운 심신을 일으켜 방안을 휘둘러 본 다음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시트를 가지런히 펼치고 이불과 베개를 바르게 놓았다.
안녕. 세헤라자드! 또 만나겠지?
돌아보니 스탠드가 멀뚱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