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 이매창지묘名媛 李梅窓之墓, 지방기념물 제 65호
사랑에 죽고 절창에 살고
입안에서 매향梅香이라는 이름이 반복하여 튀어나오는 걸 보면 그의 본명이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어서 혼동하는 것인가.
부안 명기 매창梅窓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안 인문학 여행으로 찾은 매창공원, 사랑에 죽고 절창에 살다간 그녀의 생애에 이르는 곳마다 가인의 향기가 물씬하다.
태어날 때부터 반상의 신분이 뚜렷하고 남녀 유별하던 성리학의 시대에 기생의 몸이었던 매창(1573~1610)을 후세 사람들은 칭송하여
이르기를 명원名媛이라, 묘지가 있는 곳을 ‘매창뜸’이라 부르며 각별하게 기념하고 있다. (지금의 매창공원, 전라북도기념물 제65호)
步上白雲寺(보상백운사) 걸어서 백운사에 오르니
寺在白雲間(사재백운간)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백운승막소) 스님, 흰 구름을 쓸지 마소
心與白雲閑(심여백운한)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다오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이매창이 읊은 백운사(白雲寺)라는 오언절구이다.
열 살 무렵 이곳에서 열린 시 짓기 대회에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이 모인 자리를 어른 손을 잡고 따라왔다가 일찍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열 살 어린이의 시심이 낭창하게 놀랍기만 하다.
부안현의 현리인 이양종李陽從(거문고의 명인이었다)의 딸로 자연스레 지필묵과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바탕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녀는 시와 가사는 물론 가무와 현금에 두루 뛰어난 가인이며 예인으로 한양에 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
매창의 유일하게 전해오는 한글로 지은 시조이며 교과서에도 실렸다.
이화우(梨花雨)에서 추풍낙엽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별리가 일순간 천리 공간을 뛰어넘어 절절하게 그리운 임을 향하고 있구나.
매창이 유희경과 석별하고 지은 이 시조는 <가곡원류>에 실려 전해 오는데 이보다 더한 절창이 없을 듯하다.
매창에게 사랑이 직소폭포처럼 흔들며 쿵쿵 찾아온 것은 그의 나이 19세 무렵이었다.
뭇 양반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기로서 이름을 알리던 그녀의 사랑을 가로챈 이는 다름아닌 천민 출신의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으로
28살이나 연상이었다.
첫 만남은 1591년 봄 촌은이 남도여행을 하면서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서로를 이미 풍문으로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시문으로 흉금을 주고받기에 이른다.
일찍이 남녘의 계랑 이름 들었는데(曾聞南國癸娘名)
시와 노래가 한양까지 울리더군(詩韻歌詞動洛城)
오늘에야 참모습을 서로 대하니(今日相看眞面目)
천상의 선녀가 내려온 듯 하구려(却疑神女下三淸)
제게는 오래 된 거문고 있어(我有古奏箏)
한 번 타면 온갖 느낌 피어나지요.(一彈百感生)
세상에 내 가락을 아는 이 없었는데(世無知此曲)
멀리서 온 노래가 가락(젓대)과 어울리군요.(遙和謳山笙)
멀리서 찾아온 노래가 자신의 거문고 가락과 어울린다(遙和謳山笙)는 오언절구는 촌은의 열렬한 구애에 대한 매창의 예인다운 화답이었다.
촌은은 천민이면서도 당시의 문인 재사들과 교류한 문장가였던 그가 칠언을 쓴 반면 매창은 이를 오언으로 짓고 있다.
한시에서 칠언과 오언은 두 글자만큼이나 표현의 기교와 여백이 다름을 감안하면 매창의 표현이 더 절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보고 반한 지기이자 연인이 된 것이다.
어쩌면 같은 천민이라는 상련의 심사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들 곁에 오래 머물지 못햇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발발하자(1592년) 촌은이 의병을 모아 출전하였기 때문이다.
매창은 그리움에 젖어 절창 ‘이화우 흩날릴 제~’를 읊으며 상심을 추스르기에 이른다.
매창 초상화, 1974년제작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홍길동전의 저자이며 문장가인 허균許筠,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李貴 등 뭇 문사와 관료들과 교제한 매창은 한창 나이 38세에 그만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녀는 매창뜸에 평생 고락을 함께 나눈 손 떼 묻은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절창다운 마지막 행장이다.
가인박명이라고 했던가.
속절없이 여위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연민으로 지탱하다가 마침내 한줄기 매향梅香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고 싶었으리라.
그 향기가 오늘날까지 천리에 낭자하게 심금을 울린다.
기생의 몸으로 후사도 없이 돌아간 그녀를 아끼고 추모하는 상념의 정이 오늘에 이르른 것은 인향만리人香萬里아니겠는가.
그 누구라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배겨날 수 있을 것인가.
- 사랑에 죽고 절창으로 살다간 가인 매창을 추모하며
(매창집에 58수의 시가 전해오고 있으며 동향의 큰 시인 신석정은 직소폭포와 매창, 유희경을 일러 부안 3절이라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