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벅터벅 수도 없이 걸었던 길, 이제는 아련한 추억속의 길
미루나무 길
김성룡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미루나무 길에 한 차례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가면 여기저기 크고 작은 웅덩이가 지곤 하였다.
소나기로 폭풍 샤워를 하고 잎잎을 물비늘처럼 반짝이며 손짓하던 미루나무들은 올려다볼수록 의젓하였다
지열이 한 풀 꺾인 시오리 하교 길을 어깨에 멘 책보를 추스르고 덤벙거리며 서두르다가 막 흙탕물이 가라앉기 시작한 웅덩이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어제 일같이 새롭다.
그랬다.
한 바탕 소나기를 쏟아 붓고 난 다음 성에 차는 듯 바람에 떠 밀려가던 뭉게구름 사이로 살짝 얼굴을 드러낸 푸른 하늘이 웅덩이에 투영이 되어 순간적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기 시작하면 위의 맑은 물과 아래의 흙탕물에 층이 생기고 이것이 유리 뒷면에 발라놓은 아말감과 같은 구실을 하여 거울처럼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청과 백 그 명징한 대비,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한 순간 자신의 발밑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천 길 벼랑 위에 서 있다가 엉거주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숨 막힌 긴장감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 놀라움은 여지없이 꿈속까지 이어지고 나는 그날 밤 잠자리에 오줌을 지렸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면 멀리 운무를 벗어나 능선을 들어내기 시작한 갈맷빛 무등산 기슭에 영롱한 빛깔의 무지개가 내걸리곤 하였다.
유년의 시골길에 억수같이 쏟아붓던 소나기. 미루나무 그길
그리고 색동저고리같이 피어오르던 무지개, 무지개! Angel / Darby DeVon Simm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