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석양의 발림1

그 서풍 2017. 2. 16. 14:53



석양의 발림 1

                           김성룡

 

승강기 옆 구석진 의자에

콧등에 매달린 안경이 추레한 모자가

가까스로 제 무게를 견디고 있다

 

잘근잘근 씹힌 꽁초는 어지럽고

입술을 빼앗긴 채 서 있기조차 버거운

소주병이 파리하게 널브러졌다

 

한창 상한가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지

추억하는 목덜미에 허기진 도랑은 깊어

봄을 탐하는 칼바람은 창을 쥐고 안달이다

 

차마 바벨탑의 굴레는 성스러웠다

상승하기만을 애면글면하던 바람이

십팔 층에 이르러 멈추게 될 줄이야

얼마나 쌓아올려야 도도한 저 성의 정수리에

깃발 하나 휘날릴 수 있겠느냐

 

흐르며 길을 내다 목마른 물줄기는

점점이 의자 밑으로 잦아들어

바람같이 절벽같이 조갈증의 골짝을 달려와

허물어지며 제 야윈 몸을 그러안는다

 

못다 오른 층을 쫓아 볼 씰룩이며

꿈인 듯 생시인 듯

죽은 듯 살은 듯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불콰한 발림.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를 찾아온 황홀한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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