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연속, 살바드로 달리 1931년 스페인
어느 여름날의 환상곡
김성룡
46번 시내버스를 타고 무진로를 달리면 한 마을을 만난다 네모 반듯한 정수리에 하늘을 이고 사열하듯 서 있는 그곳 계수 이 풍경 속에 드리워진 고즈넉한 숲이 말을 걸어온 것일까 버스의 브레이크를 밟고 싶은 충동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그 수풀 어스름한 그늘아래 쿵덕쿵덕 절구질을 하며 한 시절 보내고 싶다 아득하게 뱃속의 회가 동하는 굴풋한 시장기를 느끼며.... 어느 골짜기 휘돌아 나가는 계곡에 발을 담근다 성에 차지 않아 대나무 엮은 나룻배를 대고 긴 장대 내저으며 물결 따라 흘러간다 수없이 반복되는 장대의 헛디딤 끝에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나룻배의 끈기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물길이라면 그렇게 휩쓸리다 여울지어 흐르다가 더 할 수 없는 세상을 찾아 풍덩 뛰어든다 폭염이 신기루처럼 번뜩이는 포도 위에서 더위 먹은 길손이 눈을 번히 뜨고 길을 찾아 헤매는 어느 여름날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