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당문학제, 미당문학관에서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 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 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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