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촬영한 석양
석양의 발림
김성룡
십층 승강기 옆 의자에 웅크린
검버섯 핀 노인의 콧등에 뒤틀린 안경이
가까스로 제 무게를 버티고 있다
발밑의 꽁초 우그러진 주름살 짓고
입술을 빼앗긴 소주병 거리시위 하고 있다
상종가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지
추억하는 목덜미에 허기진 도랑은 깊어
봄을 향한 조바심은 맞장구치며 안달이다
바벨탑의 굴레는 성스러웠다
애면글면 쌓아올리던 바람이
칠분 능선에 이르러 멈추게 될 줄이야
얼마큼 미쳐야만 도도한 저 탑의 정수리에
깃발 하나 휘날릴 수 있겠느냐
흐르며 길을 내다 목마른 물줄기
점점이 의자 밑으로 잦아들어
바람같이 절벽같이 조갈증의 골짜기를
달려와 털석 제 야윈 몸 그러안는다
못다 쌓은 꿈을 쫒아 고개를 주억이며
어느 길목인지 안방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 불콰한 발림.
* 발림 : 판소리꾼이 내용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곁들이는 몸짓과 손짓 등의 동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