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금천 배밭에서
꿈꾸는 백년
김성룡
한 무리 배꽃이 수틀을 넘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아 올린 손길마다 송이 꽃 흐드러진다
색색의 자수가 학익진을 펼치는가 싶더니
바지런히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가늘게 네 몸을 통과할 때마다
한 땀씩 혈을 따라 배어나오는 신음소리
바람은 차츰 꽃그늘 짙게 드리운다
그 아래 땀을 들인 한 사내
먼지 걸친 배낭 벗지 못하고 추스른다
부리지 못한 달팽이집처럼
평생 지고 다니는 시름이 입맛 다신다
갈 길은 까마득한데
허리 들쑤시고 발목은 시큰거린다고
꽃잎이 새긴 백년 점점이 어룽진다.